일용할양식 DB조회
2010
04/02
말씀 : 마가복음 15:16-32(17)
제목 : 가시관을 쓰신 예수님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이십니다. 세상의 왕들은 화려한 왕관을 씁니다. 왕관을 쓰고서 최고의 자리에서 부귀영화와 권력을 누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군인들에 의해서 가시관을 쓰셨고 희롱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어떤 왕보다 더 화려한 왕관을 쓰실 수 있었지만 왕관 대신 가시관을 쓰셨습니다. 가시관을 쓰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죄인들을 구원하는 일을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가시관은 온 몸을 찌르는 고통과 눈물, 희롱과 멸시, 낮아짐과 희생과 겸손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가시관을 쓰신 예수님을 만왕의 왕으로 높이시고 모든 이름이 그 앞에 무릎을 꿇고 경배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가시관보다 왕관을 더 좋아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왕관이 아니라 가시관을 통해서 인류와 세상을 구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들과 교회의 무기는 왕관이 아니라 가시관입니다. 왕관을 쓰고서는 세상을 변화시키거나 구원할 수 없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일을 하고 싶다면 왕관의 예수님이 아니라 가시관의 예수님을 사랑하고 배워야 합니다. 가시관의 눈물, 고통, 희생, 겸손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뜻을 섬길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가시관으로 세상을 이기고 죄인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성전을 헐고 사흘 만에 새로 짓기 위해서(예수님이 새 성전이 되심), 남을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의 의미를 알아주는 자가 없었습니다. 지나가는 자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십자가에 못 박힌 흉악한 범죄자들까지 예수님을 비웃고 욕하고 희롱했습니다. 심지어는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조차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의미를 알지 못했습니다. 십자가를 지는 육체적인 고통도 힘들지만 그 의미를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욕하고 희롱하고 비웃을 때 더 힘듭니다. 고통스럽고 슬프고 외롭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처럼 계속 감당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고 끝까지 고통을 감당하신 예수님과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서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적용
가시관을 쓰신 그리스도의 길을 따릅니까?
한마디
왕관 대신 가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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