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예수님이 어디로 가시든 따르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지만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은 예수님을 따르면서 겪는 고난을 각오하도록 도우시기 위함입니다. 나름의 기대와 이상으로는 끝까지 예수님을 따를 수 없습니다. 자신의 기대와 소망이 충족되지 않고 고난만 계속될 때 결국 실망해 제자의 삶을 포기하기 때문입니다. 고난을 받으려는 분명한 각오와 결단을 드리며 따를 때 끝까지 주님을 따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라고 명령하셨을 때 그는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59b)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부친 장례는 만사를 제쳐놓고 우선해야 할 마땅한 도리입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고 중대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사람이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61)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의 문제는 가족에 대한 애틋한 연민의 정 때문에 주님을 온전히 따르지 못하는 것입니다. 죄에 대한 미련과 과거에 대한 집착도 주님을 따르는 데 걸림돌이 됩니다. 손에 쟁기를 잡았으면 뒤를 돌아보지 말고 온전히 앞만 바라보며 나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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