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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가 예수님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라고 질문합니다. 당시 유대 문화에서는 ‘세 번’ 정도 용서하면 충분하다고 여겼는데, ‘일곱 번까지’ 용서하는 것은 수준이 매우 높은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하라 명하십니다(22). 예수님은 용서의 횟수를 세지 말고, 무한히 용서해야 함을 비유로 가르치십니다. 어떤 임금이 만 달란트 빚을 진 종과 결산하는데, 그에게 갚을 것이 없었습니다. 만 달란트는 수조 원에 해당하는 천문학적인 큰 금액입니다(1달란트=노동자 20년 연봉). 주인은 종에게 몸과 아내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서 갚으라고 명합니다. 그가 갚겠다고 대답했지만, 주인은 그에게 갚을 능력이 없음을 알고, 불쌍히 여겨서 그 빚을 다 탕감해 주었습니다. 종은 정말 엄청나게 큰 용서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런데 그 종은 나가서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의 목을 잡고 갚으라고 독촉했습니다. ‘꼭 갚겠으니 참아달라’라고 부탁하는데도 옥에 가두었습니다(1데나리온=노동자 하루 임금). 주인은 이 사실을 듣고, 그 종을 불러서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라며 분노하고 옥에 가두었습니다(33). 예수님은 이 비유의 결론으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35).” 하나님 아버지는 일만 달란트나 되는 우리의 큰 잘못과 허물과 죄악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다 탕감하셨습니다. 이 놀라운 용서의 은혜를 받은 우리는 나에게 잘못한 형제의 죄를 용서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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